2023. 12. 20. 21:38

슬퍼할 힘조차 잃어버린 그

우크라이나 키에브에 머무는 동안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고 길이 미끄럽고 추워서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다. 두 번째 헤르손 방문을 시도하였지만, 끝내 방문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러시아의 악랄한 침략은 무수한 사람의 생명을 삼켜버렸을 뿐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에게도 산지옥과 같은 현장을 만들어 놨다. 댐을 파괴 당시 침수되었던 집들은 물이 빠진 후에도 참혹한 몰골의 형체를 드러내고 있다. 수리도 할 수 없는 지금의 헤르손은 비참하기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은 소망을 잃어버린 노약자들로서 떠날 곳도 없고, 또 떠날 힘도 없어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이제 두려움도 무서움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초점 잃은 눈망울과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총성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듯한 모습이다. 가까이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도 건물이 주저앉아도 땅이 깊이 파여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어 버렸어도 슬퍼할 힘조차 없어 울지도 않았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양국이 쉬지 않고 폭격을 가하니 헤르손 도시는 죽음의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너무나 심각하여 근처에도  갈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2번째 방문하기 위해 기회를 만들고 있었지만, 도저히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첫 번째 방문 때였다. 강추위 속에서 방공호에서 이틀 밤을 자고 나니 온몸이 쑤시고 근육이 뭉쳐 경련이 일었다. 어금니가 쑤시고 아프더니 곪아서 참기도 어려웠다. 

 이번 사역은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이부자리를 나눠주기 위해서 방문하였다. 소망 잃은 이웃에게 그저 따뜻한 이부자리 한 채를 주어 몸을 녹이고 전단지를 전해줌으로 
떨고 있는 영혼을 녹이고 싶고, 나라를 위하여 또 사랑하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하여 전쟁이란 생사의 기로에서 떨고 있는 저 젊은 군인들에게 따뜻한 침낭과 복음을 함께 전해주고 싶었다. 오늘 죽음을 맞이할지라도 예수님이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과 죽음 후에 영생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적절한 때에 그들에게 가장 시급한 따뜻한 이불과 물 그리고 빵을 나눠주게 하신 것에 대하여 너무나 감사하였지만,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풍족하게 줄 수 없어 미안함이 더했다. 

나는 오직 전달자로 갔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보내는 손길들과 또 그곳에서 적절히 나눠주는 손길들을 잘 연결하셔서 모든 일을 순조롭게 마무리하고 돌아오게 하셨다.

폴란드 국경을 통과하는 동안 많은 것을 느꼈다. 이곳도 소리 없는 전쟁이구나!
나라가 힘이 없으니, 국민은 이리저리 치이는 천덕꾸러기다. 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긴 줄을 세워놓고 수십 시간을 보내야 했다. 우리 우크라이나 선교사들도 똑같은 처지이지만, 낙심하거나 그리워하는 것도 사치와 같다. 조금이나마 저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각자 흩어진 자리에서 노력해야 한다.

기도제목

1. 속히 전쟁이 멈추길(다시는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없길)
2. 이 겨울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3. 임플란트하는 치아가 잘 치료되도록
4. 전쟁 트라우마에서 잘 이겨내도록
5. 3차 방문을 준비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6. 함께 동역하는 현지인들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