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시터에서'에 해당되는 글 389건

  1. 2024.03.29 3차 선교지 방문 1
  2. 2024.01.27 3차 선교지 방문 1
  3. 2023.12.20 슬퍼할 힘조차 잃어버린 그 1
  4. 2023.11.24 전쟁 중인 헤르손 2차 방문
  5. 2023.08.15 생명수와 떡을 공급함
  6. 2023.07.06 내가 목마를 때에 ... 2
  7. 2023.06.14 앞장서서 인도하시는 주님!
  8. 2023.06.06 전쟁 중의 첫 방문 1
  9. 2022.12.26 10개월이 지난 지금
  10. 2022.11.01 내 인생은 공사 중
2024. 3. 29. 13:35

3차 선교지 방문

우크라이나 사역지 3차 방문!

전쟁이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나는 이대로 있을 수 없어 가볍지 않은 발걸음을 다시 옮기게 된다. 어디로 가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는 계획에 없다. 나는 오직 그분을 신뢰하며 한 걸음 내디딜 뿐이며 내 속에서, 그 전쟁 속에서 일하시고 이루시는 분은 아버지시다.

 

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폴란드를 거쳐 우크라이나 국경은 넘는 일이 쉽지 않았기에 이번 방문은 헝가리를 거쳐 우크라이나로 들어갔다. 헝가리에서 하루 숙박을 하고 키이우로 들어가는 기차를 이용하여 국경을 통과하니 폴란드 국경을 이용할 때보다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어서 기뻤다.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우크라이나 시민이었고, 꼭 동지들을 만난 것 같이 서로 기쁘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소개와 사연을 자연스럽게 나누게 되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의 눈에는 사연이 가득히 담겨있는 듯 보였다.

전쟁에 나갔다가 부상하여 치료차 나왔다가 복귀하는 사람,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피난 길을 떠났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 대부분의 기차 안에는 늙은 여인들이다. 아직도 전쟁이 진행 중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울까! 그런 중에도 자기 나라에 들어온 것에 대하여 감사하며 기뻐했다.

 

키이우에 도착하여 하루를 쉬고 차를 빌리기 위하여 루마니아 국경 근처 체르니우치 주까지 기차를 타고 한 세르게이 집으로 갔다. 키이우에서 체르니우치까지는 540mk로 약 9시간이 소요된다. 그래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1, 2차 방문 때도 기꺼이 자기 아내 차를 빌려줘서 평안이 주의 일을 감당하게 했었던 그 차를 다시 빌리려 갔던 것이다.

이번에는 차를 팔고 싶다고 말했다. 얼마나 받겠는가? 의중을 물으니 8천 달러를 달라고 한다. 꼭 필요한 차지만, 선뜻 대답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의중을 알았다며 차를 가지고 키이우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피난을 떠난 선교사님의 가정에 머물고 있다. 헤르손에 가기 위해 서두르고 있을 때 연락이 왔다.

 

 

폭격이 격렬하여 당분간 방문이 어려우니 날짜를 늦추는 게 좋겠다고 한다. 며칠을 더 기다리다 헤르손으로 내려갔다. 아침 일찍부터 출발하여 헤르손에 오후 3시쯤 도착했다. 이곳저곳 지난번보다 더 많은 폭격으로 피해가 심각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도착하기 전날 재래시장 근처와 우리 집 근처에 심한 폭격이 있었다고 한다. 병원을 들러 보니 미사일 폭격을 당하여 사방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전쟁을 무력하게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마음과 흡사하다.

 

필요한 약품을 알아보았고, 보건소 건립과 지원을 위해 알아봤지만, 아직은 기관이 제대로 일을 추진할 수가 없으며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실정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방공호에도 난방이 없고 환풍기가 없어 그곳에 약간의 헌금을 전달하여 난방을 놓을 수 있도록 했다. 우리 집에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살고 있었다. 지붕에는 약간의 폭격으로 인하여 구멍이 난 상태였지만, 군인들 스스로 고쳐서 살겠다고 한다.

소방서에도 폭격을 맞아 숙소가 없어졌으며 이 일로 소방대원들은 방공호로 들어와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곳에 난방이 없고, 공기가 통하질 않아 기관지가 상하고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며 난방기와 공기 순환기를 구하는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그곳에 냉, 난방과 순환 기능을 갖춘 기계를 빠샤가 주문한 상태이다. 헤르손 병원에서는 약 5만 불 정도 의약품의 품목을 적어 부탁해 왔다. 시급한 대로 또 도울 수 있는 만큼을 사기 위해 키이우에 현지인 의사들과 상의하여 급한 약 일부를 조달해 주기로 했다.

키이우에서 헤르손의 거리는 약 600킬로다. 지금은 오데사로 돌아가야 하니 150킬로를 더 돌아가야 하는 실정이다. 고르지 못한 길을 달려 갔다 오면 차가 많이 망가진다. 아니나 다를까 헤르손을 다녀온 후 차가 고장이 나서 정비소에 맡겼다. 한번 사용할 때마다. 7백 달러 정도의 수리비가 들어갔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수리비가 450달러가 들어가는구나! 수리하고 며칠이 지나니 또 고장이 났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들어갈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틀이 지나고 차 수리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정비소에 갔다. 정비소 사장님이 이렇게 말했다.

-수리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하여 이렇게 오셔서 수고해 주시는데, 부품값이 들어가지 않고 내 시간만 들었으니, 서비스로 해드리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나는 차에 싣고 있던 식수와 식료품을 나눠주고 왔다.

글라드꼬브까 교회에 세워놓은 내 차를 이제 알렉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알렉도 자기 차가 고장이 났는데 부품을 살 수 없고 고칠 수 없어 세워뒀다고 한다.

-목사님! 목사님 차를 내가 타고 다녀도 됩니까?

-물론이지! 잘 타고 다니고 조심하거라. 전쟁 중에는 8인승 승합차는 군에서 사용한다고 하면 이유 없이 내줘야 하는 것이 군법이다.

하나님께서 전쟁 속에서 가족과 교회를 지키고 있는 알렉에게 전리품으로 내 차를 선물해 주셨나 보다.

나도 이제 그 차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참 사랑하던 차였는데...

그래도 사랑스러운 제자 그것도 알렉이 사용하게 되니 아깝지 않다. 또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여 주시는 것으로 생각하니 내 마음이 기쁘다.

 

또 우크라이나에서 뛰기 위해서 차가 꼭 필요하여 구하는 중이다. 한 세르게이 차를 한두 번 더 탔다가는 이제 완전히 주저앉을까? 두렵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는 물가가 너무 비싸고 차를 사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시 도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차를 구하고 두드려 보기로 했다. 아침 기도를 마치고 들어 온 소식은 주님이 포기하지 말라고 보내주신 사인이었다. 주님을 신뢰하고 실망하지 말고 잠잠히 기다리라고 하시는 그분을 바라보며 다시 힘을 내리라.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들으시며 동참해 주시는 모든 분께 마르지 않는 성령님의 은혜가 교회와 가정과 사업장 위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2024. 1. 27. 10:36

3차 선교지 방문

3차 우크라이나 헤르손 방문을 위하여

12023년 여름6.1~97

22023년 겨울10.28~12.11

320242월 중순으로 예정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시국이 안정되고 나서 선교지에 들어갈 것으로 계획하는 일은 꿈만 같습니다. 혹독한 추위 속에 떨고 있는 남은 자들과 불도 없는 곳에서 싸우는 군인들, 언제 어떤 상황에 생명의 위험을 당할지 모르는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또 작은 구호품이라도 전달하여 사기를 높여주고 싶은 마음에 이번 방문을 다시 계획하고 있습니다. 구호품을 구하는 제자들의 소리 또한 외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식수와 이불, 침낭과 약품, 의료용 장갑이 필요하다는 저들에게 작은 복음쪽지를 넣어 전달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지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먼 나라에서 선교사가 다녀간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고 살아갈 힘이 난다면 이 일을 쉬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작은 것을 드려 저들이 살 희망이 생기고 잠시나마 목을 시원하게 하고, 몸을 녹일 수 있다면 어찌 이 일이 보람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있어 진행되지만, 우리의 몫으로 주어진 사명은 이웃을 사랑하는 그 일을 여전히 행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의 사는 생활도 녹녹하지는 않겠지만, 내 작은 것을 드려도 나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함께 이 일에 동참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사람을 기쁘게 하는 곳에 협력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44:3-4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https://point-head.tistory.com/465

후원계좌 신한 김창호110.027.067702

                신한 김경자110 .086.994646

 
2023. 12. 20. 21:38

슬퍼할 힘조차 잃어버린 그

우크라이나 키에브에 머무는 동안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고 길이 미끄럽고 추워서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다. 두 번째 헤르손 방문을 시도하였지만, 끝내 방문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러시아의 악랄한 침략은 무수한 사람의 생명을 삼켜버렸을 뿐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에게도 산지옥과 같은 현장을 만들어 놨다. 댐을 파괴 당시 침수되었던 집들은 물이 빠진 후에도 참혹한 몰골의 형체를 드러내고 있다. 수리도 할 수 없는 지금의 헤르손은 비참하기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은 소망을 잃어버린 노약자들로서 떠날 곳도 없고, 또 떠날 힘도 없어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이제 두려움도 무서움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초점 잃은 눈망울과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총성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듯한 모습이다. 가까이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도 건물이 주저앉아도 땅이 깊이 파여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어 버렸어도 슬퍼할 힘조차 없어 울지도 않았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양국이 쉬지 않고 폭격을 가하니 헤르손 도시는 죽음의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너무나 심각하여 근처에도  갈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2번째 방문하기 위해 기회를 만들고 있었지만, 도저히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첫 번째 방문 때였다. 강추위 속에서 방공호에서 이틀 밤을 자고 나니 온몸이 쑤시고 근육이 뭉쳐 경련이 일었다. 어금니가 쑤시고 아프더니 곪아서 참기도 어려웠다. 

 이번 사역은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이부자리를 나눠주기 위해서 방문하였다. 소망 잃은 이웃에게 그저 따뜻한 이부자리 한 채를 주어 몸을 녹이고 전단지를 전해줌으로 
떨고 있는 영혼을 녹이고 싶고, 나라를 위하여 또 사랑하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하여 전쟁이란 생사의 기로에서 떨고 있는 저 젊은 군인들에게 따뜻한 침낭과 복음을 함께 전해주고 싶었다. 오늘 죽음을 맞이할지라도 예수님이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과 죽음 후에 영생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적절한 때에 그들에게 가장 시급한 따뜻한 이불과 물 그리고 빵을 나눠주게 하신 것에 대하여 너무나 감사하였지만,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풍족하게 줄 수 없어 미안함이 더했다. 

나는 오직 전달자로 갔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보내는 손길들과 또 그곳에서 적절히 나눠주는 손길들을 잘 연결하셔서 모든 일을 순조롭게 마무리하고 돌아오게 하셨다.

폴란드 국경을 통과하는 동안 많은 것을 느꼈다. 이곳도 소리 없는 전쟁이구나!
나라가 힘이 없으니, 국민은 이리저리 치이는 천덕꾸러기다. 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긴 줄을 세워놓고 수십 시간을 보내야 했다. 우리 우크라이나 선교사들도 똑같은 처지이지만, 낙심하거나 그리워하는 것도 사치와 같다. 조금이나마 저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각자 흩어진 자리에서 노력해야 한다.

기도제목

1. 속히 전쟁이 멈추길(다시는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없길)
2. 이 겨울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3. 임플란트하는 치아가 잘 치료되도록
4. 전쟁 트라우마에서 잘 이겨내도록
5. 3차 방문을 준비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6. 함께 동역하는 현지인들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길

2023. 11. 24. 14:22

전쟁 중인 헤르손 2차 방문

전쟁 중인 헤르손 2차 방문
길어지는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고 세계인의 관심 속에서도 잊혀져 가는 듯하여 마음이 아프다. 
뉴스에서조차 다뤄지지 않는 지구 한쪽 구석의 소식이 되어 버린지 오랜 것 같다. 

'추위가 다가오니 걱정이 되어'
고민 끝에 이곳 저곳을 다니고, 도움을 주셨던 곳에 다시 노크를 했다. 
얼마가 모아질지 알 수 없었지만 모아진 만큼만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우크라이나에 들어가기로 했다. 
비자 신청을 하고, 입국 날짜 3일 전까지 후원금이 준비되지 않았다.
두 사람 티켓은 엄두도 못냈고, 머물 숙소도 마땅치 않고, 
구체적인 계획을가지고 움직이는 것도 아니니 이번에도 혼자서 떠나기로 했다. 

항공료가 만만치 않아 포기를 할까 고민도 했지만, 언제나 믿음으로 발을 내딛을때마다 역사하셨던 그분만 바라보며 예매를 했다. 

그리고 얼마후 한국기독교 봉사단에서 연락이 왔다. 
헤르손 구호 후원금을 우크라이나 전쟁 대책 위원회 통장으로 입금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환전을 하니 29,870$. 

우크라이나 들어가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10월28일12시간 비행 후 10월28일 폴란드시간 17시에 도착하였다.
폴란드에 머물고 있는 동료 선교사님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공항 도착해서 폴란드 버스 터미널 까지 픽업을 받았다.

긴 비행에 몸은 피곤하지만  28일20시30분 즉시 우크라이나 땅 리비우로 향해  29일오전 07시에 리비우에서 현지 전도사 샤사의 픽업을 받고, 주일 예배를 인도한 후 리비우 피난민과 소외된 노인들을위한 급식 사역을 바라보던중,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거대한 농지와 재력을 가진 우크라이나의 참담한 작금의 모습에,

이 나라 정치 지도자들의 부패함에, 분노 느꼈고

동시에 대한민국을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우리 다음 세대들의 미래비전은 오직예수님 라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10월30일 오전 작은 합승 택시에 여행가방을 싣고 5시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체리니우치 라는 도시로 달려갔다. 
체리니우치에는 헤르손에서 피난간 '한 세르게이' 가정이 머물고 있었는데, 우크라이나에 머무는 동안 사용할 차를 세르게이가 빌려 주기로 하여 차와 세르게이의 아내 아냐가 준 김치 한병을 들고 곧바로 키이우로 향했다. 

다시 8시간을 달려 키이우에 도착하여 호텔에서 한 숨을 돌리나 했더니 긴 여행의 여파였을까 차가 고장났다. 

차를 고치려면 또 며칠 동안은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이번에 머무를 곳은 키이우 시내에서 좀 떨어진 외곽지다. 
피난을 떠나 비어있는 선교사님의 가정집이다. 
그곳에는 밀레토플에서 전쟁을 피해 나온 동료 선교사님 교회의 성도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가정집이지만 하나의 난민촌이었다. 
다행히 선교사님 내외분의 교육으로 공동체는 질서 있게 생활하고 있었고 식사는 스스로 해결하고 있었기에, 
나도 그들처럼 내 식사와 정리 정돈 그리고 빨래를 스스로하며 함께 지내고 있는데 덜 외롭고 마음이 든든하다. 
이렇게 오랜시간이 걸려 우크라이나에 왔는데 이번에는 지난 1차 방문때보다 더욱 폭격이 심하여 헤르손 방문이 통 허용되질 않았다. 
하루에 수 십 발의 폭탄이 떨어지고 미사일이 날아 다닌다는 소식만 들려오고 있다. 
마음으로는 벌써 수십번 헤르손에 다녀왔으나 때를 기다릴수밖에 없었고, 기다리는동안 전도지를 준비하고 추위에 보탬이 될 이불과 담요 그리고 전쟁 중인 군인들에게 전달할 침낭을 준비했다. 

                                                                         구호품과 함께 넣을 전도지

 

11월17일 
드디어 침낭 일부가 완성이 되었고 차량이 준비되어 선발대로 출발할 차량에 완성된 짐을 싣는 동안 나도 짐를 챙겨 헤르손으로 같이 떠날 채비를 했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어쩐지 처량한 마음이 들었다. 

따뜻한 마음과 함께 싣은 따뜻한 이불

 

잠시후,
함께 동역 하는 빠샤에게서 전화가 왔다. 
10살 된 어린 아들이 심장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는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비는 무료이지만 약과 다른 비용은 개인부담이라고 해서 약간의 보탬을 주고 빠샤의 아들(바울)을 위해 함께 기도를 했다. 

 

빠샤는 지금 헤르손에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라며, 한 주간 더 상황을 지켜보며 일단 헤르손으로 물건만 먼저 보내고 기다렸다 가자고 하여 할 수 없이 싸 두었던 짐을 풀었다.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전쟁. 
헤르손에 폭격은 언제나 멈출런지…
먼 곳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것 보다도 더, 우크라이나 안에서 기다리는 것이 어려웠다. 

 

11월21일 
드디어 주문제작한 2차분의 물건이 모두 완성 되어 물건을 싣고 새벽부터 헤르손을 향하여 출발했다. 
이번에도 안전을 위해 오데사 도시 쪽으로 돌아가는 우회 경로를 선택해 가야만 했다. 
헤르손을 향하여 달려가는데 마음이 설레이기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다. 
도착하여 지하 대피실에서 하루 밤을 지냈다. 

다음날 늘 다니던 레닌거리로 나가보았다. 
이전엔 빵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던 가게에 케이크만 몇 개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이 위험한 때에 사람도 없는데 장사를 하느냐 물어 보니  돈도 없으니 빵을 소복히 쌓아 놓을 필요가 없다며, 긴 전쟁에 지친 빵가게주인은 소망 잃은 눈을 끔뻑인다. 

 

 

그래도 추워지는 동절기에 생존에 필요한 이불을 안고 찾아온 외국인 선교사가 고맙기만 하다고 이구동성으로 감사를 표한다. 

 

전해주신 모든 후원금으로 준비한 야전 침낭300개, 2인용 이불 350개, 그리고 전도지. 
숫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지만 준비한 마음은 너무 기쁘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23,000그리브나(한화 약 80만원) 급여을 받는다고한다. 
이 급여도 2달간 지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전방에서 근무하는 군인에겐 첫 해에 군복 한 벌 군화 1컬레가 공급되며, 그 후 군복과 군화가 떨어지면 자비로 구입해야 한다고 했다. 
심지어 방탄 조끼, 헬멧, 군복, 양말, 음식을 준비 해야하는데 불을 사용하면 적에게 위치가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견과류와 시리얼, 가루우유와 빵 같은 음식을 자비로 구입해서 먹어야 한다.  
군인 가족들은 후방에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니 함께 전쟁에 참여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군인들은 일주일씩 전방과 후방에서 교대하며 전투에 투입된다. 
참담한 현실의 군인들과 가족들의 애타는 사정을 들으면 눈물이 난다. 
전쟁은 이렇게 모든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든다. 

젊은 군인들에게 꼭 필요한 얼마 안되는 야전 침낭을 나눠줬다.
젊은 군인 하나가 한국인이 나에게 감사의 표시라며 K팝을 부르며 춤을 춰 주었다. 
그렇게 한 번 웃을 수 있었다. 
야전 침낭이 너무 부족하다. 
전쟁 상황에서 언제 어떤 젊은 생명이 사라질까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고 슬프기만 하다. 
그들이 생명을 걸고 전투에 임하는 동안 야전 침낭 안에서 조금이라도 따뜻한 마음을 느끼며 전도지를 읽고 예수님 영접하는 기회를 갖게 되도록 기도한다. 
젊은 군인 들에게 더 많은 침낭을 전달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한국교회에서 헤르손으로 

                             아들을 병원에 입원을 시켜 놓고도 이렇게 복음을 함께 전하는 빠샤가 고맙게 느껴진다.

 

 

마25:35-36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 일에 동참한 모든 분들의 헌신은 예수님을 섬긴 것이고, 
주님을 향한 이 헌신의 마음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믿는 자들의 삶의 본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렇게 어린이들에게도 따뜻한 이불이 행복을 가져다 줬다.

 

 

기도제목
1.모든 전쟁은 여호와의 손에 있음을 믿고 하나님의 긍휼의 바라며 
   기도해야 하는 시대임을 모두가 깨달을수 있기를.
  
2. 생명을 걸고 전투에 임하는 동안 야전 침낭 안에서 조금이라도 따뜻한 마음을 느끼며 전도지를 읽고 예수님 영접하는 기회가 될수있기를
   
3. 다음 세대를 이어 받을 한국 교회 믿음의 자녀들이 잘 세워지기를 

4.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정치, 경제, 사회, 조국이 하나가 되기를 위해 

                                                                김 창호 김 경자 선교사 드림

2023. 8. 15. 15:59

생명수와 떡을 공급함

우크라이나 헤르손 소식 2023.7.24

  헝가리의 국경 근처의 도시 우즈고르드는 헤르손에서 1천 킬로가 떨어진 곳이다.

급한 식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3일간 트레일러 두대가 달려왔다.

한국 교회봉사단의 구호품과 여러 교회와 개인들의 아름다운 섬김의 손길을 통하여 생필품과 식수를 헤르손 지역 시민들에게 공급할 수 있었다. 목마른 사람들에게 생수를 공급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위험천만한 지역이고 바닷물에 조약돌을 던지는 격이지만, 누군가에게 꼭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일이기에 헤르손을 향하는 일이 어리석어 보이겠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여러 발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목격할 수 있었고, 구호품을 전달하는 그 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피곤에 쌓인 몸을 뉘었지만, 여전히 가까이서 들려오는 포격 소리로 인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 생명을 주께 맡겼지만,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보다.  

특히 수해 지역인 드네쁘로 강 너머는 러시아 군의 포격 사정 거리가 가까이 있기에 더욱 긴장하게 된다. 나와 함께한 구호팀이 집중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수민스크 지역은 노약자와 어린이 2천여명이 살고 있다.

지난번 러시아가 카호브카 땜 파괴 후 인명피해와 주택침수로 인해 아직도 피해 복구는 상상도 못할 일이며 인명피해도 헤아릴 수가 없는 실정이다.

전쟁 전 헤르손 지역에는 약 35만명이 살았는데 현재는 5 7천여명이 거주하고 있다는 정보다.

그 중 80%는 힘없는 노인층이며 중년을 훌쩍 넘긴 여인들과 나약한 민초들만 남았다.

정부에서는 식량을 공급하며 연금을 주고 있기에 그나마 일용할 양식으로 연명하고 있다. 

그래도 민족의식이 있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경찰과 군인을 도와 함께 민간조직을 만들어 구호품 공급을 위하여 각지에 도움을 청하는 일과 소식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몸도 많이 상하여 쓰러지는 일도 여기 저기서 들려온다. 시민들의 눈가에 눈물이 말라 버린 모습, 끝이 보이지 않는 평화를 기대하는 한숨 소리는 안스럽고 안타까움을 자아낼뿐이다.

그간 나는 침수로 어려움을 겪는 헤르손 수민스크 지역에 구호품을 전달하였다. 믿음의 형제 빠샤와 안드레이는 이번 나의 사역에 많은 도움을 줬으며 자기의 몸을 돌아보지 않고 힘에 겹도록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728일 포격이 더욱 거세지기에 오후에 헤르손을 떠나야만 했다. 현재는 키이우에 머물면서 헤르손의 상황을 살피고 있다. 갑자기 쓰러진 빠샤를 헤르손 병원에 두고 혼자서 상경했다.

차를 몰고 키이우로 올라 오는 길에도 두 대의 드론 공격을 목격했다.

헤르손을 들어가는 일도, 머무는 일도 허락된 일이 아니고 또 위험천만한 일이기에 잠깐 들어가 일을 진행하고 바로 빠져나와야만 한다.

지금 수민스크 지역은 한 달 이상 공급할 수 있는 량의 식수를 확보해 둔 상태다.

그들에게 나눠줄 식량도 약간 비축하여 현지 구호팀이 원활하게 공급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 지시하고 키이우로 올라왔다.

키이우에서도 헤르손을 돕는 현지 개신교 교회들이 헌금으로 식료품을 준비하고 있다.

나의 바람은 95일 한국으로 들어가기 전, 헤르손 교전이 멈추고 더 이상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고 전쟁이 종식되어 사랑하는 성도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헤르손의 노인들과 사람들을 보면서 감정이 없는 사람들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전쟁의 후유증으로 사람들이 감정이 없는 영혼들이 되어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옆에 폭격을 당하여 아수라장이 된 것을 목격하고도 감정 없는 눈으로 태연하게 바라보는 것을 보니 흠짓 놀랍다.

꼭 조정 당하는 기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한국의 전쟁 상황은 어떠했는지 상상이 된다 우리는 국토의 90%가 망가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처음과는 달리 현재 국토의 10%의 전쟁 상태로도 이렇게 많은 인명이 고통을 받는다 이제는 우리민족 북한 동포를 위해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나라의 구속을 위해 기도하며,   다니엘의 뜨인 돌의 역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고대하며 사랑하며 감사하며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은혜를 누릴 때란 생각이 든다.

에베소 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해주신 모든 교회와 개인과 모임위에 하나님의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나를 통해서 작은 자에게 선한 일을 하게 하신 주님

이 선한 일에 함께 동참케 한국교회 봉사단,선교회, 복음의 선한 사역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 십자가를 지고 동역하여 주신 교회와 선교 동역자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023. 7. 6. 18:11

내가 목마를 때에 ...

식수 공급 요청

지구의 온난화로 기후 변화가 생기니 우크라이나에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교회 봉사단에서 받은 물품 대금은 10일이 지난 오늘에서야 은행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 대금 완납이 되어서야 식료품과 생필품을 준비한다. 공급받는 사람들에게 요긴하게 쓰일 것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 물건이 현지인에게 전달되기까지는 10일 이상 소요될 것 같다.

 

 

에어컨을 설치할 기술자와 사다리차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며 마음만 졸이며 시간을 보냈다. (신장과 간)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던 빠샤가 퇴원하는 날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에어컨 설치와 청소기 공급을 위하여 1주일간 헤르손에 다녀왔다. 에어컨을 설치하고 바람이 나오는 순간 다시 한번 감사하다며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숙였다. 여기저기 병동에서 나온 간호사님들이 자신들도 필요하다며 요청한다. 미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마음이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물론 강 건너 글라드꼬브까 교회와 성도들은 만날 수 없다. 행여나 러시아 군이 물러나서 헤르손 집에 거할 수 있을까! 하는 바람으로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집 주변을 정리하고 돌아왔다. 헤르손에는 연신 폭탄이 터지는 소리, 드론이 날아가는 소리, 총소리가 들려 왔다. 더 무거운 마음은 자빠로지야의 원자력 발전기를 폭파한다는 엄포에 힘이 빠진다.

 

이제 24시간이 남았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젊기에 나중, 사역을 위해 더 살아야 하니 폴란드로 피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이가 나이니, 만큼 키이우에 있으라고 한다.

 

40도가 오르내리는 불볕더위로 인하여 밖에서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의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숨이 막혀 밖에서 걸을 수가 없다.

지금 내가 돌아본 바로는 가장 시급한 것이 식수입니다.

헤르손에는 여러 곳에서의 도움으로 급한 것들은 공급되고 있었지만, 가장 급한 식수는 받을 길이 없습니다. 서쪽 (르비우)지역에서 식수를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곳을 찾았다. 1km나 떨어진 헤르손으로 이동하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정부는 이들의 식수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듯하다. 또 노인들이 멀리 마트까지 가서 사 올 수도 없습니다.

 

112리터 물을 식수로만 사용한다면 12일 정도 사용할 수 있다.

6리터짜리가 한 팩에 2통이 들어있고 우선은 이렇게 공급하는 것이 시급한 것 같다.

트레일러 1대 운반비 포함 2800$ 수량은 15백 명이 10일간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이다.

트레일러 3대분이면 이 더운 날씨에 45백 명이 10일간 사용할 수 있는 식수 공급이 가능하다.

현재 침수 지역인 곳에 공급받아야 할 인원은 급하게 계수한 바로는 18백명이다. 급한 대로 트레일러 3대분만 긴급 지원해 준다면 잠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오늘 연락을 하면 3일이면 헤르손에 도착한다. 그러면 즉시 현지 침수 지역 사람들에게 공급할 수 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할 수 있을 때 나누고, 구할 때 주고, 부르실 때 가야 할 것이다.

 

나는 염치없지만, 전달자이기에 우크라이나 헤르손의 소식을 전달하며 커피 한잔을 아끼고 이 일에 동참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훗날 이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우리의 갈증을 해결해 줬습니다. 고백한다면 족하지 않겠나!

 

2023. 6. 14. 12:15

앞장서서 인도하시는 주님!

 

네가 고난 중이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81:7

 

 

물을 만나 건널 수 없을 때도

기가 막힐 웅덩이에 빠져 있을 때도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했을 때도

견고한 담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을 때도

먼저 두려워할 것은 없다.

홍해를 가르시고,

웅덩이에서 꺼낼 사람을 보내주시고,

담을 처리할 능력자를 보내시고

또 하늘 문이 여시고 시선을 고정하신 그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 옛날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똑같은 방법으로 역사하신다.

이리하지 않으실지라도 해결하며 즐기고 누리고 기뻐하면 만사가 기쁨이다.

우리의 인생에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이 터널을 지나고 나면 이전 것이 아닌 또 다른 새로운 변화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

 

예고도 없이 떠나있던 그 기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마음만 졸이다 우크라이나에 들어와 느끼는 것은 첫째 사람들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고, 둘째 나를 만나서 반가워하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었고 안아 줄 수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에 맞춰 일하시는 하나님!

내 입술로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고백했던 말은 ‘’내가 우크라이나에 들어가면 헤르손이 뚫릴 것입니다.‘’ 그랬더니 정말 날 부끄럽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입술의 열매를 보게 하셨다.

 

헤르손 우리 집에서 93킬로 떨어진 까호브까 댐 폭파로 많은 집들이 침수가 되었다.

댐의 폭파의 영향으로 남쪽 흑해 부근에 자리한 헤르손 시내에 큰 영향이 미쳤고 인근 지역이 큰 피해를 봤다. 드네쁘로 강 주의에 소도시들이 물에 잠겼고, 물은 기름과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 식수는 물론 전기까지 끊어진 상태이다. 교회와 성도님들 가정과 우리 집은 수압의 경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보가 뜰 정도이지만 안심할 수 없어 2틀 정도를 지난 후에 범람하는 양을 보면서 대피해야 한다. 이 사고로 잠시 양국의 군인들이 포를 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진정 이틀이 지나고 나니 다시 포탄이 피융 피융 내 주의를 지나쳐 날아갔다. 들고 있던 트렁크를 머리에 이고 나무 뒤로 몸을 피해야만 했다. 여기저기 유리창이 산산조각을 냈으며 길 가던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을 함께 대피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자리를 피해야만 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애국정신과 단결하는 모습이 가슴 뭉클하게 했다. 특히 교회들은 무너진 집을 수리하고 병원들을 찾아다니며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며 힘에 겹도록 애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헤르손의 침수와 인명 구호를 위하여 보트를 모으고 구호 물품을 싣고 6.8일 새벽에 트럭과 차들이 출발하기로 했다 그때 차가 필요하기에 체르니비차에서 빌려온 내 차를 가지고 나도 함께 합류하기로 했다. 안전은 하나님께 맡기고 합심으로 기도한 후에 출발했다. 외로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 중에 앉아있는 자신들을 외면하지 않고 찾아와준 외국인인 나를 자신들보다 나를 더 걱정하는 현지인들에게 오히려 내가 감사했다. 위험을 감안하여 여자인 까짜와는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키이우에서 헤르손까지는 581킬로의 거리이다. 이 길을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길 간절히 바라며 ...

 

직접 병원에 들러 환자들을 만났다. 최악의 상황인 병원을 둘러보았고 12백 명의 환자들을 돌보는 2분의 의사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수술실에 에어컨이 없어 무더운 날씨에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당장 시급한 이 일은 에어컨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갈아입을 옷도 부족하고 생필품이 당장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은 물이 빠져나가고 있다. 이제 집안과 길에 들어온 흙과 모래를 정리하기 위하여 삽이 필요하다. 당장 수백 대의 삽이 필요하다. 어디에서 이 많은 삽을 구할 수 있을꼬! 힘이 있는 남자가 없어 누가 이 일을 할꼬! 노인만 덩그러니 남은 이곳을 어찌할꼬! 구호팀들의 눈에 눈물이 맺혀 떨어진다.

 

기도제목

1.이곳에 평화가 속히 오길

2.더 이상 사상자가 생기지 않도록( 남아 있는 성도들을 보호해 주세요)

3.''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할 수있는 힘을 주십시오

4.머무는 동안 안전사고 없도록



아름다운 자태속에 비밀을 안고 서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RzHl32LTZo

 

 

 

 

 

 
2023. 6. 6. 20:11

전쟁 중의 첫 방문

2022216일에 우크라이나를 떠나와서 한국에 머물며 휴식이 아닌 늘 마음은 우크라이나에 머물러 있었다.

202361일 인천에서 출발하여 폴란드에 도착하니 61일 오후 5시다. 11시간을 비행하여 달려왔다.

동료 선교사님 기꺼이 내준 장소에 머물러 하루를 쉬고, 동병상련으로 마음을 졸이며 폴란드에 머물고 있던 우크라이나 선교사님들이 찾아와서 정보를 공유해주고 식사를 함께하며 낮설지 않도록 위로해 줬다. 따뜻한 마음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64일 그곳에 계신 선교사님의 도움으로 구매해 놓았던 버스표는 64일 키이우를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버스 안에는 지치고 근심 어린 표정의 여인들뿐, 남자라곤 서너 명밖에 없었다. 국경을 통과해야 하는 시간은 여전히 사람들을 지치게 했다. 약 4시간 만에 국경을 통과하였고, 다시 6시간 정도를 달려 키이우로 갔다.

 전에 국경을 지나던 감정과는 사뭇 다르다. 버스 안에 여자 사람들의 지치고 힘든 모습은 전쟁으로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14개월 동안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 흔적이 고스란히 보였다. 한국에서 아무리 계획을 세워봤자 감이 잡히지 않아 그냥 무계획으로 들어와서 보니 조밀하신 하나님께서 이미 적소 적절한 배치로 준비해 두셨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일어서서 나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다시 깨닫게 하셨다.

 

   어제 키이우 선교사님이 비워둔 아파트에 손님이 찾아왔다.

글라드꼬브까 교회 건축을 한 빠샤가 찾아온 것이다.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는 키이우와 헤르손을 오가며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키이우에서는 건축과 집 고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또 그가 돌아간 후에는 반가운 손님이 왔다. 까짜는 통역으로 내가 머무는 동안 함께 하기로 했다.

 

밤 기차에 몸을 싣고 루마니아 국경 근처 체르니비치로 갔다. 피난을 떠난 가정에 방문하여 교제를 나누니 감격스러웠다. 우크라이나에 머무는 동안 그의 차를 빌려 쓰기 위하여 그곳으로 먼저 가야만 했다. 우리의 사역지 헤르손에는 금방 방문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러시아 군이 63일 저녁 까호브까의 댐을 폭파하여 헤르손 시내에도 적지 않은 피해가 있었다. 드네쁘로 강 근처의 집과 별장 그리고 캠프장이 물에 잠겼다.

폭탄에 남은 것은 미사일로, 미사일로 남은 것은 도적질로 또 남아 있는 것은 수장시키는 장면을 남은 자들이 바라만 보고 있을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차를 가지고 키이우로 돌아와서 구호 물품을 싣고 떠나는 사람들과 함께 상황을 지켜보다가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선교사들은 직접 현지에서 뛸 수 없어 아웃 사이드에서 도울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마음을 쓸어내려야 할까!

러시아에서 키이우에 미사일을 쏜다면 수도를 막아내기 위하여 공격을 막아내는데 우선시하기에 그나마 키이우가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부와 남부 헤르손에는 격전이 심하기에 미사일과 폭탄을 다 막아내지 못하고 뚫릴 수 있으므로 위험지역으로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머무는 4주 동안에 헤르손 전역을 수복하는 쾌거를 기대해 본다.

 

 홀로 차를 받아 체르니비치에서 돌아오는 길의 자연은 여전히 아무 일 없는 일상이 흐르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구상은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갑자기 떠났기에 그저 안타까워만 하던 이곳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이 땅을 밟아 보는 것만으로도 가벼워지는 것 같다.

내일을 다시 기대해 보며, 또 기다려 보자!


2022. 12. 26. 17:23

10개월이 지난 지금

우크라이나를 떠나온 지 오늘로 10개월이 되는 날이다.

10개월의 공백 기간에 어떤 계획을 세울 수도 없었고 사역 돌아갈 수도 없었고

내일을 위하여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는 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일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 이 시간은 과연 헛된 시간이였을까?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것을 바라보며 서 있는 한 페이지에 시간이었다.

적시 적소에 배치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보면서 조밀하신 하나님께 순종할 수밖에 없다. 

내 주위에서 일어난 일들을 잠잠히 바라보면서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며 위대하심을 크게 느끼게 되는 시간들이다. 

 

 전쟁 가운데서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구하는 자에게 주라’’는 말씀이었다. 

환경과 그 사람의 인품을 생각하여 나누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자에게 주는 것은 지극히 합당한 하나님의 법칙이라는 것을 알 수있다.

 

마25:34-36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너희를 위해 준비된 나라를 물려받아라. 35 너희는내가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 집으로 맞아들였고 36 벗었을때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 간호해 주었으며 갇혔을 때 찾아 주었다’라고말할 것이다. 이 말씀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인 것임을 알았다. 

선교사의 마음 자세가 이것임을 또 다짐하게 되었고 또 바람이 있다면 흩어진 제자들이 이렇게 살기를 원하는 것뿐이다.

 

 전쟁 기간에는 이념을 초월하여 자신의 생명을 지켜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남은 사람들에게 러시아군이 쳐들어 와서 주민등록증을 바꾸라며 가가호호 종용하였지만, 지금껏 바꿀 수가 없었다는 백을 한다. 당연히 우크라이나 군인이 들어와 회복하면 다시 주민증을 우크라이나 것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자신들이 정복한 땅에 학교를 열어 공부를 시키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살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애굽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사마리아 땅에 숨어서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정하신 뜻은 무엇이었나,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집을 짓고 살라고 하셨다. 70년 정한 기한이 차면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말이다.  




이곳 저곳이 폭격으로 상처를 입었다. 내가 늘 다니던 시장입구 지나가는 사람도 차도 안전지대를 없다

 헤르손의 남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가슴 조이던 이 시간도 감사한 일이었다.

헤르손을 잊지 못하고 기도하되 더 뜨겁게 간절함으로 기도할 수 있는 조건이 있게 한 계기이다.

글라드꼬브까 교회에 남은 가정 수는 알렉 목사님의 가정을 비롯하여 이제 4가정이 남았고, 이들은 불도 없고 전기도 없는 상황에서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고 뜨라 장로님의 가족 모두는 한국으로 나왔으나 집 걱정에 피난 가지못한 부모님을 걱정하여 이번 기회에 나오시도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고 장로님 부부는 알렉 목사님에게는영적인 육적인 아버지와 같은 힘을 주었다 하지만 이곳으로 나오게 된다면 힘이 빠질 것같아 걱정이 된다.

우리는 다만 교회에 모이는 이들을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니 모든 결정은 각자 본인들의 몫인 것같다.

이 전쟁기간에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 예배를 드린 이들이 모습이 왜 이리도 서글프고 마음이 시린지 모르겠다. 

해맑은 어린 심령들이 전쟁을 알기나 할까!

 니까 은혜교회에 남은 자들은 안드레이 목사 부부를 비롯하여 몇 가정이 모여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예배를 드리고 있다.폭격이 심하여 집에서 살수 없어 가까운 곳으로 몸을 피하여 있다가 폭격이 끝나면 또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공습이 없는 틈에 모임을 갖고 있다.침대 30개를 선교사님들을 통하여 전달이 됐다. 약품이 필요하고 따뜻한 옷이 필요하며 발전기가 필요한 것을 빼면 그래도 감자를 심고 토마토를 심어 생계를 이어간다고 한다.

 

 

생명샘교회 여전도님 안나는 전쟁을 피해 잠깐 이탈리아로 탈출했다. 군인으로 나간 남편이 걱정되어 다시 돌아와 오데사에 기거하며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가장 시급한 곳, 군인들을 위해 발전기를 부탁해 왔다. 우크라이나 선교사님들은 연합으로 각 교회에 발전기 한 대씩을 공급해 주기로 했는데 세 교회에 한 대씩을 줄 수 없어 가장 급한 군인들에게 보내기로 했다. 글라드꼬브까 사랑누리교회에는 아무것도 보낼 수 없고, 안드레이는 일용한 양식과 필요한 것들을 구해 오니 그래도 살아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안나 남편인 군인들에게는 침대(지누스) 50개를 선교사님들의 도움으로 받게 됐다. 

 

 우크라이나 젤스키 대통령은 헤르손 도시는 탈환되었지만 물과 전기공급이 없고 겨울을 나기 어려우니 도시를 떠나 따뜻한 봄이 되면 돌아오라고 부탁을 한 상태이다.글라드꼬브까 교회 근처에서는 (집 근처 1킬로 떨어진 곳)헤르손 도시를 향하여 지난 토요일에 미사일 70개를 던졌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고 땅이 구멍이 나고 기물이 파괴되었다. 헤르손 도시에서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장악하여 글라드꼬브까 쪽으로 미사일 수십발을 쐈다고 한다. 

어떻게 될까? 모두 무사하길 간절히 바랄뿐이다.  

 

 헤르손 집은 벌써 10개월이나 주인 잃은 빈집 상태이며 러시아 군인들이 지나간 자리이니 모든 것에 수리가 필요한 상태이다.그래도 한국에서 사는 우리는 어느 정도 마음의 회복되어가고 있다. 물론 다시 사역을 재정비하며 오늘의 좁은 터널 뒤에 전보다 더 밝은 빛이 있을 것을 기대하며 준비하고 있다.

 현재는 고려인들을 돕고 성경 공부를 가르치며 신학교 강의도 하고 상처진 영혼들을 찾아가는 일을 하고 있다. 12월 18일 한국 오피스텔에서 첫 예배로 모였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을 것임을 확실히 알기에 또 한 그루의 복음 나무를 심어 보기로 한다. 

 

2022. 11. 1. 00:16

내 인생은 공사 중

우크라이나를 떠나온 벌써 8개월이 지나갔다.

복음을 가슴에 담은 어떤 사람들은 상황에 의해 민들레 씨앗처럼 널리 널리 날아갔다.

자신들의 원하던 곳으로

비록 그곳은 낯설고 어설프고 고단하지만 어쩔 도리 없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언제까지 아련했던 고국만 그릴 없지 않겠는가 이유를 대며 불평하기보다는 상황에 순응하여 감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자리에서 예수님의 자녀닮게 흔적을 남기고 최선을 다해야하지 않을까! 다시 만나는 그날에 주어진 시간을 이렇게 살았다는 간증으로 남긴 달란트를 올려 드려야 하지 않을까! 그래, 주어진 시간도 활용하여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이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이 살아야 한다.

 

니까볼의 성도들도 피난을 갔지만 안드레이 목사와 가족은 남았다.

사모님의 국적이 벨라루스아이기 때문에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니까볼은 자빠로지야와 헤르손의 중간 지점에 있다 보니 많은 폭격이 있었고 어려움을 당하여 마을 50% 폭격을 당했다.  젊은 안드레이도 국경을 넘을 수가 없다.  그들은 어려운 시기에 피난민들을 돕고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해 주는 일을 돕고 있으며 예배를 드리며 주님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수시로 약품을 구하고 일용한 생필품을 구하여 나눠주고 있다. 그래도 이곳은 러시아군이 완전 점령을 했기에 물질을 보낼 수가 있다.

끝까지 달리자~

 

격렬한 전쟁 중에서도 글라드꼬브까 교회와 남아있던 성도님들은 안전하였었고, 남은 성도님들은 알렉 목사님을 중심으로 변함없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으며 교회를 가꾸고 있었기에 마음이 한결 가벼웠었다. 지금 최초로 점령당했던 헤르손은 러시아군이 밀려 나가면서 최고의 긴장이 밀려오고 있다. 시골 마을까지 방공호를 파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직도 떠날 없었던 몇몇 가정 때문에 신경이 우크라이나를 향하여 집중하고 있다. 헤르손 시내의 소식은 물론 시내에서 60킬로 떨어진 글라드꼬브까까지 까맣게 뒤덮인 러시아 군들이 가가호호 다니며 집을 떠나 크림으로 가라고 명령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기도하는 사람들은 근심은 이런 상황속에서도  떠날 없는 알렉 목사님의 가정 때문이다. 7명의 어린 자녀들과 어머니, 아내 그리고 자신까지 10명과 40마리의 소와 가축을 데리고 떠날 수도 없고, 떠난들 평안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연세가 높은 장로님과 마르다 권사님, 베네라 권사님, 엘라라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으면서 떠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아지스와 로자는 지난주에 심페로폴로 떠났다.남은 사람들의 마음이 더 서늘할 것 같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성도님들!

                                                   

 

 지금 떠날 준비를 하는 알렉 목사님의 가정이 해를 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빨리 결정하여 늦지 않게 움직이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는 나도 없어 마음이 무거울 뿐이다.

알렉목사 가정

 

슬러와는 독일에서 예배를 드리며 지내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으며

생명샘교회 안냐는 이탈리아에서 다시 오데사로 돌아와 아파트를 빌려 기거하고 있다.

군인인 남편이 걱정되어 돌아와서 남편과 가까운 곳에 거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필요하지 않고 다만 집으로 빨리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한다.

피난민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슬라와 전도사)

 

한국어를 배우던 학생들도 이곳저곳에 흩어져 빨리 우크라이나에 봄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들은 한국에 들어 고려인들을 찾아다니면 성경 공부와 신학교에 강의하고 있다.

우리 인생은 지금 공사 중이다.